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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월드컵/2026년 북중미 월드컵

멕시코는 함정이 아니었다, 우리가 함정이었다 — 홍명보호 조별리그 3경기 총평

by Tactics & Trophies 2026. 6.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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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는 함정이 아니었다, 우리가 함정이었다 — 홍명보호 조별리그 3경기 총평

공이 가운데로 떨어지던 순간, 나는 화면을 끄고 싶었다. 비기기만 해도 32강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비기지조차 못했다.

A조 최종 결과를 한 줄로 정리하면 이렇다. 한국, 1승 2패, 승점 3, 조 3위. 체코전을 잡았고 멕시코전과 남아공전을 내줬다. 더 정확히 말하면 멕시코에게는 졌고, 남아공에게는 자멸했다. 자력 진출은 무산됐고, 지금 대표팀은 다른 11개 조의 결과를 멀거니 지켜보며 와일드카드 한 자리를 구걸하는 처지가 됐다. 이 글에서는 23년 전 거스 히딩크의 4강 신화와 지금의 참담한 성적표가 왜 이렇게 다른 길을 걸었는지, 전술과 리더십이라는 두 갈래로 풀어보려 한다.

한국 32강 진출 실패




체코전의 환상, 멕시코전의 경고, 남아공전의 추락

세 경기를 순서대로 복기해보면 패턴이 보인다. 체코전에서는 후반 막판 극적인 역전승을 거두며 들끓었다. 하지만 그날의 승리는 팀으로서 준비된 결과물이라기보다 선수 개개인의 순간적인 판단력에 더 빚진 승리였다는 평가가 적지 않았다. 박지성 해설위원은 경기 후 정리하며 "체코전에서 보여줬던 공격이 팀으로서 준비된 게 아니라 선수가 즉흥적 판단을 내렸던 것 아닌가"라는 의문을 던졌다. 좋게 말하면 위기 대응력, 나쁘게 말하면 재현 불가능한 우연이라는 뜻이다.

멕시코전에서 그 우연은 통하지 않았다. 후반 41분이 되어서야 유효슈팅 하나가 나오는, 답답하기 짝이 없는 경기였다. JTBC 김환 해설위원은 이 경기를 지켜보며 "득점에 가까운 장면이 마지막에야 나왔다는 건 심각한 문제"라고 경고했다. 그 경고는 사흘 뒤 정확히 현실이 됐다.

남아공전. 비기기만 해도 32강에 직행하는 상황에서 한국은 졸전 끝에 0-1로 무너졌다. 점유율 68%, 패스 성공 641개로 남아공(277개)을 압도했지만 정작 기대 득점(xG)은 0.9에 그쳤다. 공은 우리가 들고 있었는데, 경기는 상대가 지배했다. 점유율과 패스 숫자만 보고 "우리가 더 잘했다"고 말하는 건 숫자놀음에 불과하다. 축구는 결국 골로 말하는 스포츠다.


"플랜 B가 없다"는 오래된 문제, 끝내 고쳐지지 않았다

이 대목에서 박지성 해설위원이 던진 한 마디를 다시 옮겨야 한다. "1차전부터 3차전까지 내내 공격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 명확히 보이지 않았다." 세 경기, 90분씩 270분을 지켜본 전직 국가대표의 결론이 이거였다. 더 아픈 건 패배가 확정된 후 그가 남긴 말이다. "공격 작업을 하고 슈팅까지 가는 과정이 어때야 하느냐에 대한 전술적인 준비가 확실히 부족했다."

휴고 브로스 남아공 감독의 경기 후 기자회견 발언은 더 노골적이었다. 그는 한국이 빠른 스피드를 활용해 수비 뒷공간을 파고드는 팀이라는 걸 미리 알고 준비했다고 밝혔다. 다시 말해, 우리 전술이 상대에게 완전히 읽혔다는 자백을 상대 감독의 입을 통해 들은 셈이다. 더 뼈아픈 건 실점 이후의 대응이다. 후반 들어 카스트로프를 투입하며 측면에 변화를 주는 시도는 있었지만, 그러고도 스리백이라는 기본 골격은 끝까지 바뀌지 않았다. 박지성 위원은 후반 34분 시점에 "조금 더 전진해서 모험을 걸어야 할 시간대인데 아직도 변화의 모습이 없다"고 지적했는데, 결국 경기는 그 모습 그대로 끝났다.

CBS 라디오에 출연한 신문선 명지대 교수의 진단은 더 구조적이다. 그는 이번 사태를 "예견된 참사"라 불렀다. 그가 짚은 지점은 전술보다 더 근본적인, 선수단 관리와 신뢰의 문제였다. 경기를 이틀 앞두고 갑자기 서너 자리를 바꾸겠다고 공표한 점, 그리고 그 결과로 손흥민이 선발에서 제외된 점을 두고 신 교수는 "선수 입장에서 모멸감을 가질 수 있는 결정"이라 평가했다. 그러면서 2002년 히딩크를 끌어왔다. 히딩크가 성공할 수 있었던 동력은 선수와 감독이 서로를 "비즈니스 파트너"로 대하는 신뢰 관계였다는 것이다. 결과를 내려면 전술보다 먼저 그 신뢰가 있어야 한다는 뜻으로 들렸다.


손흥민을 뺀 것은 패착이었나, 승부수였나

이 대회에서 가장 뜨거운 논쟁거리가 된 결정은 단연 손흥민의 선발 제외였다. 2014년 브라질 대회부터 빠짐없이 대표팀에 있었던 주장이 월드컵 본선에서 처음으로 벤치에서 경기를 시작했다. 홍명보 감독은 상대 체력이 떨어지는 후반에 투입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계산이었다고 설명했지만, 결과는 전반 45분 동안 단 한 번의 유효슈팅도 만들어내지 못하는 빈공이었다.

손흥민 본인은 이 결정에 대해 군말을 달지 않았다. "내가 어디서 어떻게 뛰어야 하는지는 잘 알고 있다. 감독님께서 특별히 말씀하시지는 않아도 내가 할 몫은 알고 들어간다"는 게 그의 답이었다. 무더운 날씨를 핑계 삼지도 않았다. "우리만 이 날씨에서 뛴 것은 아니다. 모두 똑같은 환경에서 경기를 했다"고 잘라 말했다. 패배 후 그가 남긴 말은 오히려 자책에 가까웠다. "경기장에서 많이 도와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크다."

문제는 이 결정을 둘러싼 메시지의 비일관성이다. 비기기만 해도 32강이 확정되는 경기에서, 팀의 핵심 공격 옵션을 빼는 동시에 베스트 11 세 자리를 동시에 흔드는 결정이 과연 "안정"을 추구한 선택이었는지 "도박"이었는지조차 명확하지 않았다는 데 비판의 본질이 있다. 안정을 추구했다면 변화를 최소화했어야 했고, 변화를 추구했다면 그 변화가 결과로 증명되어야 했다. 둘 다 아니었다.

한국 32강 와일드카드 순위




감독이 직접 인정한 말들

이 부분은 에둘러 말할 필요가 없다. 홍명보 감독 본인의 말을 그대로 옮기는 게 가장 정확하다. 패배 다음 날 기자회견에서 그는 "되돌아봐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경기"라고 했다. "왜 갑자기 이런 경기력이 나왔는지, 나도 코칭스태프도 좀 당황스럽다"는 말도 나왔다. 데이터상으로는 멕시코전과 큰 차이가 없었다는 설명을 덧붙였지만, "눈으로 보이기에는 느려 보이거나 뛰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며 정작 본인도 부진의 원인을 명확히 짚어내지 못했다.

결과에 대한 책임은 본인에게 있다는 말도 분명히 했다. "결과에 대한 모든 책임은 감독에게 있다"고 고개를 숙였고, "그런 상황을 막지 못한 것도 감독의 잘못"이라고도 했다. 다만 이 모든 발언을 종합해보면, 정작 무엇이 잘못됐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은 빠져 있었다. 책임은 인정했지만 원인은 못 찾았다는 모순이 거기 있다.

박문성 해설위원은 이 지점을 정확히 찔렀다. 그는 생중계 중 끝내 눈물을 보이며 "이렇게 좋은 선수들이 모여 있는데 공격할 때 단 하나의 아이디어도 보이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이 부진을 선수 개개인의 책임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건 무조건 홍명보 감독의 책임"이라며, "감독 책임이 아니라면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느냐"고 되물었다. 선수들이 안 뛴 게 아니라 못 뛴 거라는 그의 진단도 인상적이다. "전술과 약속된 움직임이 없으니 선수들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2002년과 2026년, 같은 위기 다른 결말

23년 전 한일 월드컵에서 히딩크가 보여준 것은 단순히 전술 하나가 아니었다. 강팀을 만나면 포메이션을 바꾸고, 선수단의 역할을 재배치하고, 경기 중에도 유연하게 그림을 다시 그리는 능력이었다. 거기에 더해 선수와의 신뢰 관계를 비즈니스 파트너 수준으로 끌어올린 리더십이 그 전술적 유연성을 뒷받침했다.

2026년의 홍명보호에게는 그 두 가지가 모두 보이지 않았다. 스리백이라는 기본 틀은 실점 이후에도, 경기 양상이 완전히 꼬인 후에도 바뀌지 않았다. 선발 명단은 경기를 이틀 앞두고 예고 없이 흔들렸고, 그 결과로 주장이 모멸감을 느낄 법한 상황까지 만들어졌다. 전술의 경직성과 신뢰의 균열이 동시에 드러난 셈이다.

물론 한 가지는 분명히 해야 한다. 한국이 자력 진출에 실패했다고 해서 곧바로 탈락이 확정된 건 아니다. 48개국 체제로 확대된 이번 대회는 조 3위 12팀 중 성적이 좋은 8팀에게도 32강 티켓을 준다. 한국은 지금 그 와일드카드 경쟁에 운명을 맡긴 처지다. 하지만 와일드카드로 살아남는다 해도, 이번 조별리그에서 드러난 전술적 경직성과 리더십의 균열이 자동으로 치유되는 것은 아니다. 32강에서 마주할 상대는 한국이 보여준 약점을 이미 영상으로 분석하고 들어올 것이다.

체코전의 환희는 짧았고, 멕시코전의 경고는 무시됐고, 남아공전의 추락은 예견된 참사라는 평가를 들었다. 23년 전 우리는 강팀을 무너뜨릴 방법을 찾아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은 더 단순하다. 약팀을 상대로도 이기는 방법을 우리는 여전히 알고 있는가.